중앙대 전 이사장 김희수 평전
김희수 중앙대 전 이사장 타계 5주기 맞아 평전 출간
파산 직전의 중앙대를 지켜내고 공익사업에 매진했던
청빈하고 우직한 인생의 기록을 남기다
정직과 신용으로 성공한 기업인이자, 봉사와 기부의 정신으로 여생을 바친 교육인 김희수 이사장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이다. 진달래꽃과 소나무 껍질을 먹으며 연명해온 망국의 어린 시절, 재일 한국인에게 척박했던 일본 땅, 그곳에서의 모진 환경을 딛고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을 거둔 재일 기업가 김희수, 그는 1987년 돌연 파산 위기에 놓은 중앙대를 인수하며 교육자로서의 인생 2막을 시작하였다. 당시는 정부도 기업도 국민도 중앙대학교를 살려낼 힘과 의지를 갖추고 있지 않을 때였다. 이후 그는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중앙대학교의 한 가족으로서 학생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22년 동안 한결같은 길을 걸어왔다. 또 중앙대 재단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수림재단과 수림문화재단을 통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장학 사업과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공익사업에 몰두하였다. 조국을 향한 열정과 신념으로 한 평생 청빈하게 살아온 그의 이야기는, 약육강식의 법칙과 권모술수의 논리가 만연한 지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고 높은 귀감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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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1장 무지하고 못 배운 게 가장 서러웠다
어린 학생들과의 마지막 대화
진달래꽃과 소나무 껍질을 먹으며
빼앗긴 나라, 잃어버린 땅
할아버지 무릎에서 익힌 천자문
우리말을 가르쳐주신 선생님
열세 살에 홀로 건넌 현해탄
제2장 일본에서 성공해 조국으로 돌아가리라
조센징과 한도징
기술을 배워야 살 수 있다
징병에 끌려가기 직전 맞이한 해방
피오줌이 나올 정도로 힘들었던 시절
돈이 흘러드는 우물을 파라
형과 함께 어군탐지기 회사를 설립하다
제3장 긴자에 23개의 빌딩을 세우다
일본에서 가장 비싼 땅의 주인이 되다
내 집처럼 편안한 빌딩을 만들자
철저한 사전조사와 계획을 세워 일하라
내 이익보다 고객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라
땅이나 건물을 되팔아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
최고의 자산은 정직과 신용이다
제4장 나는 한국인이다
된장찌개와 칼국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재벌
가정부와 파출부를 두지 않는 아내
윤리 없는 금전은 다 쓸데없는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
남의 밥을 먹어봐야 세상을 안다
제5장 일본 땅을 팔아 한국 땅을 일구다
평생 가슴에 담아둔 세 개의 한
부도 직전의 중앙대학교를 인수하다
오직 조국의 인재양성에 대한 부푼 꿈 하나로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와 도서관부터 짓다
참으로 어설프게 발표된 학교발전계획안
양심소리투쟁위원회와의 고단한 싸움
제6장 일본이 받은 노벨상, 우리가 못 받을 이유 없다
이상한 신문 광고
가방에 책을 잔뜩 싣고 공항을 오가던 시절
국내 최초로 국악 단과대학과 대학원을 세우다
중앙대 이사장 재임 22년 동안 지켜온 김희수의 3불 정책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짓기까지
교육은 투자가 아니라 기부다
제7장 모든 것을 버릴 때 진짜 부자가 된다
그가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은 이유
목포공생원과 희수목욕탕
홋카이도에 심은 나무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2인용 병실에서 홀로 떠난 진정한 부자
사람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다
에필로그
동교(東橋) 김희수(金熙秀) 연보 2
참고자료
“찬란한 빛은 아닐지라도 어두운 곳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라”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단벌 양복의 재벌’, 어느 언론에서 김희수 이사장을 소개한 표현이다. 그는 정말로 평생을 운전기사 하나 없이 뚜벅이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한 번 산 옷은 닳고 해지도록 입어 단벌신사라 불리며 검소한 삶을 추구했다. 투병 중에도 호화로운 병실을 마다했으며, 마지막 순간도 자그마한 서민용 2인실 병실에서 맞이했다. 일본 굴지의 부동산 재벌이자 10조엔의 자산가로 불렸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재일교포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이의 마지막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소탈하고 청빈한 모습이었다. 그는 오직 정직과 신용으로 성공을 이뤘고, 그 성공으로 조국과 사회를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고 싶었다고 전한다. “배워야 산다, 배우지 않으면 죽는다.” 이것은 곧 김희수 이사장의 삶을 관통해온 신앙이 되었고, 지금 그가 후학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신념의 뿌리가 되었다. 김희수 이사장은 누군가 자신을 사람을 남기는 일에 헌신하다 간 사람으로 기억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생전의 자신의 인생철학처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그의 바람 그대로 ‘사람’들이 남아 그의 뜻을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