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우리는 ‘집’을 지켰다
집: 불안, 정서적 허기, 저렴한 욕구 해결의 공간
2015년 한 해 많은 트렌드들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그 중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것을 꼽자면 백종원의 집밥, 차승원과 스타 셰프 등 멋진 남성들의 쿡방과 먹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30대 젊은 남성들부터 평생 차려주는 밥만 먹었던 60대 아버지까지 요리하는 남자가 이렇게 멋있고, 요리가 이리 쉬운 것인 줄 몰랐다며 주방에 자발적으로 들어가 밥을 지었다. 지난 1년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같이 쿡방과 먹방을 흥미진진하게 시청하고, 즐겁게 집밥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을 휘어잡은 집밥 열풍. 사람들은 왜 집밥에 열광했을까? 집밥과 먹방 열풍 이면에 있는 소비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2016 대한민국 트렌드》는 국내 1위 온라인리서치 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110만 명의 소비자 패널들에게 리서치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면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변화의 흐름을 읽어낸 트렌드 전망서다. 비슷한 조건의 소비자들에게 같은 테마의 질문을 2~3년마다 반복해 던져서 얻은 유의미한 데이터이기 때문에, 반짝하는 유행이 아니라 2016년 한 해를 지배할 중장기적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듯이, 대중 소비자들의 큰 흐름을 읽기 위해서는 현재 소비자들의 감정을 확인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저자들은 과학적으로 조사한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 연구한 결과, ‘집’이라는 공간에 새롭게 주목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의 ‘집’은 돈을 벌 수 있는 강력한 지렛대가 되어왔기 때문에, 교환 가치가 더 중요했다. 그런데 최근 소비자들에게서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내가 사는 공간 자체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불안감이 높은 시기이다 보니, 또한 다양한 욕구를 경험하려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집에서 되도록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것 같다. 집에만 있어도 SNS가 있어서 인간관계 유지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다 보니 ‘사는 공간’에 관심을 갖고 집안을 가꾸기 시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제 사람들에게 ‘집’은 자신의 기본적인 안전과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안심의 공간’이 되었다. 현재 소비자들에게 집은 교환 가치가 아닌, ‘사용 가치’를 높이는 대상이 된 것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집에 가만히 있을 때가 마음이 가장 편하다는 대한민국 소비자들. 삶이 불안하고 위태로울수록 위로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집’을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집에서 TV로 대리만족하며, 시간과 돈을 아끼는 사람들
2016년, ‘대리경험’에 주목하라
오늘의 결핍이 내일의 니즈(needs)가 된다. 2015년의 결핍이 2016년의 니즈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2015년, 높은 불안감을 집에서 해소하던 소비자들은 2016년에는 과연 어떤 변화의 흐름에 반응할지 살펴보자.
그동안 부동산 성장기에 투자 대상으로 주목받았던 집은 이제 없다. 앞으로 집은 ‘저렴하게’ 시간을 보내게 해주면서 일상적인 불안을 낮춰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욕구를 경험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2016 대한민국 트렌드》의 분석에 따르면 소비자들 중 10명 중 7~8명은 집에 있는 동안 충분히 많은 활동을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충분히 많다: 75.2%).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집에서의 바쁨’은 주로 TV 보기, 인터넷 정보 검색 등 대부분 ‘뭔가를 보고 싶고’, ‘찾아봐야 하기 때문에’ 바쁜 것 같았다.
사람들이 주로 보는 요리, 놀이, 여행, 육아, 일상 체험 등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인기 요인 공통점은 바로 ‘일상과 유사한 형태의 친숙함’을 전제로, 자극(활력)을 제공하고 평소 경험하지 못하는 경험을 대리해준다는 것이다. 즉, 현재 소비자들은 하고 싶은 경험을 TV를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다. 실제 소비자들 대부분은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이 내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고 있으며 심지어 그 대리만족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힐링’의 경험까지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여행을 떠나고 다양한 체험을 하며 그럴듯한 요리를 직접 하는 일련의 활동들은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바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대외적인 활동에서의 ‘바쁨’은 늘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현금과 시간의 양은 늘 부족하다. 그 대안으로 소비자들은 편안하고 안락하게 그리고 시간과 비용을 별로 들이지 않고 원하는 경험을 대신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처럼 보인다(집에 머무는 시간의 증가 이유 조사 결과 2순위: 밖에 나가면 돈 쓸 일이 많아서 39.2%). 지금은 ‘집’이 그 경험을 채워주고 있는 것 같다. 편안한 소파, 손 안의 리모콘만 있다면 ‘집 TV’가 나를 대신하여 모든 것을 경험해 주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이러한 경향을 지속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기저에는 ‘시간’과 ‘돈’이라는 현실적인 자원의 부족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부족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물론 현실적 자원이 부족함에도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려고 할 것이다. 2016년 트렌드 키워드로서 ‘대리경험’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110만 패널을 통해 과학적으로 전망한
2016년에 주목해야 할 7가지 핵심 트렌드
매년 키워드가 난무한 트렌드 전망이 쏟아진다. 독특하고, 특이한 현상에 집중한 트렌드 키워드 읽기 방식은 초기에 대중의 눈길을 끌 수는 있어도, 중장기적인 전망을 안정적으로 예상하기에는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다. 대중 소비자들이 ‘돈과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현재 처해있는 ‘부족함’, 즉 ‘현재의 결핍’을 채우려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데이터 분석 결과, 소비자들은 답답한 현실에 대해 근심과 걱정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과거에 비해 더 ‘외롭고’, ‘허무’한 느낌을 가졌고, 이 현실에 ‘화’가 나있는 듯 보인다.
《2016 대한민국 트렌드》는 바로 이런 감정적 경험을 배경으로 하여 2016년 핵심 트렌드 7가지를 전망한다. 현재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키워드가 바로 ‘불안감’이다. 이전에는 그저 개인적 차원의 일시적인 감정으로 통용되던 불안감이 언제부터인가 훨씬 상시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전체를 뒤덮고 있다. 더 나아지지 않는 경제 상황과 불확실한 노후, 취업과 실직 등 당장 먹고 살 문제는 물론 범죄와 안전사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너무 많은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게다가 점점 홀로 고립되고 단절되는 ‘사회 구조’와 너무 빨리 변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회 변화’도 개개인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 개인과 공간
1. 시간: 당신이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
“한국 사회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 71.0%
현재 소비자들이 느끼는 시간 부족의 경험과 원인에 대해 진단한다. 막연한 불안감으로 타인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심리적, 경제적, 시간적 여유와 관심이 줄어들고 있으며, ‘뭔가 해야 한다(하고 있어야 한다)’, ‘그냥 놀고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라는 강박관념이 깔려 있다. 만성적인 시간의 부족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의 관심은 타인보다 ‘나(for me)’, ‘가치 소비’에 대한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키워드: 불안]
2. 집: ‘저렴하게’ 모든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 공간
“집에 머무는 시간이 작년 대비 증가했다” - 23.8%
집이라는 공간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그 공간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바쁘고 복잡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집에서 비로소 위안과 여유를 갖게 되는 것으로 모든 연령대에서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절반 이상은 사회적 불안감이 커지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진 것 같다고 응답했다. 많은 사람이 집에서 여러 불안감을 달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키워드: 휴식, 편안함]
▶ 인간관계 욕구
3. 콘텐츠: 광고를 스토리에 밀어 넣는 이유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영화 등을 찾아보는 편이다” - 63.5%
요즘 사람들이 콘텐츠를 선택하는 주요 방법으로 떠오른 ‘찾아보기’와 ‘다시 보기’가 광고를 어떻게 밀어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앞으로 광고는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을 때, 혼자 찾아본다. [키워드: 재미, 찾아보기, 다시 보기]
4. 정서적 허기: 집 밖에서 집밥을 찾다
“집 밖에서도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식사를 하고 싶다” - 86.4%
요리 권하는 시대지만, 정작 요리할 시간과 비용이 부족하다. 요리가 문화 아이콘이 된 시대의 이면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허기’가 사실은 ‘정서적 허기’일 수 있다는 점을 분석했다. 요즘 사람들이 느끼는 ‘배고픔’은 역설적으로 ‘진짜 배가 고픔’이 아닐 수도 있다. [키워드: 정서적 허기, 결핍]
5. 사회적 욕구: 집에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완벽한 방법
“야한 동영상을 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 73.4%
대외적인 활동이나 경험이 위축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대인관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SNS의 활용과 형태에 대해 분석했다. 사람들은 사람이 그립지만 밖에 나가지 않는다. 대신 집에서 TV와 컴퓨터를 켠다. 혼자서도, 밖에 나가지 않아도 여러 욕구를 채울 수 있다. 이제 집에서도 충분히 ‘사회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다만 실제 인간관계에서는 필연적인 ‘상처’만 피할 수 있다면 말이다. [키워드: 폐쇄적 인간관계, 상처받지 않기]
▶ 사회적 현상
6. 불안: 우울한 재테크, 희망은 없다
“내가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 - 66.3%(2014년) → 70.4%(2015년)
부동산의 투자 가치가 사라진 시대의 재테크 방법과 나가는 돈, 즉 세금에 대해 민감한 직장인들의 분노를 읽을 수 있다. 스트레스와 분노로 번아웃 되어가고, 출근할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진다. 이유 없이 발끈하며 운전대를 잡고 화를 낸다. 재테크를 해도 소득은 늘지 않기에, 내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에 더 민감해진다. 공정성에 대단히 민감해진 사회 분위기에서 정부나 정책 당국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매우 궁금하다. [키워드: 분노, 공정성]
7. 불신: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블랙박스가 없으면 왠지 억울한 일을 겪을 수 있을 것 같다” - 84.5%
현재 한국 사회는 공공성에 대한 총체적인 의심이 확대되는 상황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 같다. 가족 이외에 누구도 나를 지켜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살벌한’ 대한민국. 피곤한 삶을 피해보자는 심리는 이민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게 하고 있다. 저(低)신뢰 사회를 대표하는 ‘비즈니스 아이콘’인 차량용 블랙박스를 통해 소비자들의 정서와 시대 분위기에 대해 분석했다. [키워드: 낮은 사회적 자본, 신뢰, 투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