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의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새로운 모델을 섭외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인기 유튜버와 유명 배우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효과를 끌어낼 수 있을까. 에미레이트항공은 2016년 당시 인기를 끌던 온라인 방송인 케이시 네이스탯에게 1등석 항공권을 주며 홍보를 제안했다. 기내식과 욕실 등을 네이스탯이 직접 경험하며 비행의 전 과정을 찍은 9분짜리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6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항공사에서 부담한 비용은 1등석 항공권 가격 2만 1,000달러가 전부였다.
한편 에미레이트항공은 네이스탯과의 프로젝트 이전에 할리우드 유명 배우 제니퍼 애니스톤과 광고를 진행한 적이 있다. 애니스톤이 출연해 편안함을 강조한 이 동영상 광고는 유튜브에서 약 600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 프로젝트에 든 비용은 얼마였을까. 500만 달러였다.
단순 숫자로만 비교하면, 500만 달러짜리 애니스톤의 광고보다 2만 1,000달러를 쓴 네이스탯의 광고가 10배 이상의 효과를 올린 셈이다. 물론 모든 기업이 유튜버를 모델로 섭외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매체 지형의 변동, 짧아진 유행의 주기, 세대의 변화, 달라진 소비자의 취향, 쏟아지는 페이크 뉴스 등 초연결 사회에 접어들며 새롭게 등장한 현상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황금 시간대에 TV 광고를 진행했는데도 왜 매출이 오르지 않느냐며 담당자를 타박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그런다고 하루아침에 전 국민의 이목을 사로잡는 파격적인 기획이 나올 리 없다. 조직원의 사기만 떨어뜨릴 뿐이다. 이 책에서 조직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룬 이유이기도 하다.
매체 지형의 지각 변동, 짧아진 트렌드 주기, 정보 과잉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전략은 무엇이 다를까
지금까지 기업을 지배하던 커뮤니케이션 원칙은 단순했다. 경쟁 기업보다 커뮤니케이션을 더 큰 규모로 더 빨리, 더 자주 반복하면 시장이라는 전장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초연결이 일상의 영역이 되면서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초연결 시대에는 말 그대로 무엇이든 연결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심지어 사물과 사물 간에도 연결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연결이 발생할 때마다 커뮤니케이션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커뮤니케이션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정보에 대한 문턱이 낮아지면서, 누구든 메시지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비전문가가 만든 것일지라도, 초연결이 깔아놓은 추월차로에 한번 올라타면 순식간에 전 세계를 휩쓰는 콘텐츠가 되기도 한다.
한편 모든 것이 연결되고 어떤 정보든 손쉽게 얻고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보고 듣는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내게 의미 있는 정보와 방해가 되는 소음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필요치 않은 정보로 인한 피로감이 쌓여가는 상황에서 무엇이든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와 맞물려 자신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더욱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취향과 관심사의 호오를 가르는 선은 더욱 선명해졌다.
기업, 매스미디어 등 지금까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던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과거에 큰 영향력을 자랑하던 매체는 점차 힘을 잃고 있고, 트렌드 주기는 몰라보게 빨라지고 있으며, 정보 과잉으로 인한 무관심의 벽은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달라진 시장을 따라갈 수 없다.
“나는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갈 방향으로 움직인다”
‘더 많이’ ‘더 자주’ ‘더 빨리’의 함정에 빠지는 이유와
이를 구하는 ‘이너프 커뮤니케이션’ 5원칙
환경이 달라졌으면 대응이 달라져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마케터는 잘못이 없다》는 개인은 물론 기업의 생존법으로 ‘이너프 커뮤니케이션’(enough communication)을 제시한다. 효과의 극대화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의 기본 원칙으로, ‘최대’가 아닌 ‘최적’에 주목했다. 잘못된 방향으로 멀리 가는 것보다, 제대로 된 방향으로 한 보 내딛는 게 낫다.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두 명의 저자는 이너프 커뮤니케이션의 다섯 가지 원칙을 전한다. 첫 번째로 임팩트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다(‘임팩트는 팩트보다 강하다’). 팩트보다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고객은 기업의 신념과 가치를 보고 싶어 한다. 과거에 비해 늘어난 보이콧 현상, 바이콧 현상이 그 증거다. 모두에게 사랑받기는 더욱 어려워졌는데, 한순간에 모두가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은 높아진 셈이다. 나이키, 도브, 유나이티드항공, 델타항공, 업존의 사례를 중심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대안을 설명한다.
두 번째는 사람을 플랫폼으로 재발견하라는 것이다(‘최고의 플랫폼은 사람이다’). 저자는 과거와 달라진 CEO의 커뮤니케이션에 주목한다. 젠틀하고, 논란 가능성 있는 발언을 삼가며, 어디서나 환한 웃음을 보여주는 CEO의 시대는 갔다. 마크 저커버그는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는 정치적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고,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조울증 증상을 고백한다.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CEO의 메시지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내용이다. 이들은 회사의 대표임에도, 한 명의 개인으로서 메시지를 내보낸다. 솔직하고 구체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에 관심을 기울인다. 여기서 사람들이 연결을 원하는 근본 이유로 돌아가보자. 더 많은 연결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시 개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이제 일론 머스크의 말 한 마디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현상, 트럼프가 ‘소셜’한 이유, 펭수 신드롬 사이의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네트워크가 활성화될수록 사람들은 개인으로서 존재하고자 하고, 개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보다 더 개인적이어야 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중립은 독이다.
세 번째는 새로운 빈도 개념이다(‘새로운 빈도를 이해하라’). 높은 빈도로 노출을 시도하는 건 효용이 다했다. 마케팅 전문가 론 마셜은 사람들이 하루 동안 브랜드와 공고에 얼마나 노출되는지 궁금했다. 마셜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세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두 손을 들었다. 브랜드와 광고를 487개까지 세고는 더 이상의 카운트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두고 ‘광고 쓰나미’라 불렀다. 그때가 2015년이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지금은 단위 자체가 달라졌다. 양에 비례해 무관심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어떤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까. 저자는 미국과 한국의 차이점을 들어 새로운 빈도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설명한다. 미국은 저맥락 사회로 분류되고 한국은 고맥락 사회로 분류된다. 서로 대화나 정보를 주고받을 때 어느 정도의 정보가 수반되어야 하는지에 따른 분류다. 이를 기업 마케팅·커뮤니케이션에 적용했을 때, 한국의 경우는 많은 메시지가 오히려 효과적이지 못하거나, 심하게는 역효과를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채널의 단일화, 메시지 빈도 조정, 시각화 등을 제시한다.
네 번째로는 감정을 공략하라는 것이다(‘기술은 감정을 이기지 못한다’). 어제는 없던 제품과 기업이 오늘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일이 이상하지 않은 요즘이다. 혁신의 속도는 몰라보게 빨라졌다. 반면 그에 못지않게 쇠락의 속도도 빨라졌다. 핏빗, 스냅챗, 포켓몬고, 고프로가 그 예다. 내일이면 더 흥미로운 게 나올 텐데, 계속해서 머무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전투에서는 이성이 이길지 모르나 전쟁에서는 인간 본성과 공감에 기초한 감정이 승리한다. 경영학자 스콧 갤러웨이를 이를 한마디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예측하건대 샤넬은 시스코보다 오래 살아남고 구찌는 구글이 유성처럼 소멸하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기술 이상으로 감정이 중요해진 지금, 저자는 어떻게 소비자의 감정을 오랫동안 잡아둘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소셜 무드의 중요성을 꼽는다(‘소셜 무드가 좌우한다’). 인간은 모방하는 사회적 원자다. 항상 해석과 판단, 결정의 자료를 주변에서 찾고 징후를 따른다. 커뮤니케이션은 이 과정에서 나침반 역할을 한다. 조직에서 분위기는 순응의 동기가 되며, 이 분위기는 외부 소셜 무드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곧 외부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지 따져보기 이전에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조직 문화에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다. 조직 구성원의 지지와 참여, 그리고 일관된 메시지 없이는 제대로 된 외부 커뮤니케이션도 있을 수 없다. 이에 더해 집단과 세대의 특성에 맞는 단어 활용 방법, 사회 변화의 맥락을 이해하는 방법 등을 제시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었지만 어떤 것도 듣지 않는 역설적 상황에서 ‘더 많이’, ‘더 자주’, ‘더 빨리’라는 정언명령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초연결 시대가 초래한 불확실성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스티브 잡스는 아이스하키 선수 웨인 그레츠키의 말을 빌려, “나는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갈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말한 적 있다. 이너프 커뮤케이션과 그 원칙은 공이 있는 곳이 아니라 공이 갈 방향을, 현재가 아니라 미래가 움직이는 방향을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