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반기업 정서라는 유령이.” 6퍼센트. 2016년 갤럽이 실시한 조사에서 기업을 ‘매우’ 신뢰한다고 대답한 미국인의 비율이다. ‘꽤’ 신뢰하는 비율은 12퍼센트였다. 조사 결과를 하나 더 살펴보자. 2016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실시한 연론 조사를 보면 미국의 18세에서 29세에 이르는 젊은 성인들의 42퍼센트만 자본주의를 지지한 반면 51퍼센트는 자본주의에 부정적이었다.
대부분의 응답자는 자본주의 대신 무엇을 선호하는지 확신이 없었지만 놀랍게도 33퍼센트는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꼽았다. 이전 세대가 이해하는 그런 사회주의를 뜻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젊은 세대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탄생한 기업의 형태를 좋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기업의 천국으로 알려진 미국의 실제 모습이다. 미국의 일이라 치부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 있을까? 한국의 상황은 미국 못지않다. 2017년 여론조사업체 원스리서치가 전국 성인 10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55.1%가 기업에 대해 부정적 인식(나쁨, 매우 나쁨)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좋음, 매우 좋음 등 기업에 호감을 갖고 있다는 답변은 34.1%였다. 기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반기업 정서를 가진 국민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와 같은 일반 인식에 더해, 언론과 정치권과 학계가 ‘기업 때리기’에 가세하고 있다. 언론은 기업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와 논평을 연일 쏟아내고 정치권은 기업을 각종 규제로 옥죄려 한다. 어느새 기업은 적폐와 동의어가 되었다.
대기업은 과연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을까?
기업은 어느 누구보다 부정직한 존재일까?
회사는 직원에게 전쟁터 같은 곳일까?
구글 같은 거대 기술 기업은 정말 악마 같은 대상일까?
물론 반기업 정서에 대해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기업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 윤리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는 얘기다. 저자 타일러 코웬은 이에 대해 일부 인정한다. 하지만 기업의 잘잘못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 그것을 넘어 기업에 과도한 비난과 혐오를 쏟아내는 건 다른 맥락이다. 구분되어야 한다. 또한 저자는 기업이 일반 시민, 국가, 사회에 제공하는 주요 혜택에 비하면 그 의미가 무색해진다고 말한다. 기업은 우리가 소비하며 즐기는 거의 모든 제품을 생산하며, 우리 대부분에게 일거리를 제공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게다가 기업에 대한 비판들 역시 면밀한 검토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다. 사실과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이 소비자로부터 폭리를 취하고, 환경 규제와 경제 규제는 교묘히 피하며, CEO는 능력과 성과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임금을 받고, 직원을 부당하게 다루며, 늘 윤리적 행동보다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려 한다는 사례가 대표적인데, 저자는 각각의 주장들을 링 위로 불러들여 논리 대결을 펼친다.
일례로 4장 ‘직원들은 일에서 얼마나 만족감을 얻고 있을까?’를 살펴보자. 흔히 회사는 직원을 영혼을 갉아먹는 잔인한 괴물로 묘사되고, 사용자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독한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사실이다. 직원의 입장에서 회사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제공하는 곳이며, 사람들은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를 통해 보다 더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회사를 다니는 것으로 금전적 이유를 첫 번째로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회사와 직장 생활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기업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인 CEO에 대한 보상과 대기업 독점 현상을 보자. 저자는 경제학자 그자비에 가베이와 오귀스탱 랜디어의 유명한 연구를 토대로 CEO가 지나치게 높은 보상을 받고 있는 것 아님을 보여준다. 통계적으로 기업의 시장 가치 및 성장에 비례해 연봉이 자연스럽게 조정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언뜻 부당하게 많은 연봉을 받는 것 같지만, 시장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며 이는 주주 및 기업 모두의 이익 추구 활동에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이다.
이어서 독점 문제에서는 독점 그 자체를 문제라고 볼 수 없다는 논지를 펼친다. 독점 현상이 과거에 비해 약간 높아진 점은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과장되어 있다. 지나친 독점이 자본주의의 원동력인 경쟁을 위축시킨다고 말하지만, 사실과 멀다. 또한 독점으로 인해 소비자가 감수해야 하는 직접적인 피해는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에 비해 우리는 소비자로서 훨씬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월마트, 구글처럼 독점 기업의 대표로 여겨지는 기업은 가격을 낮춤으로써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다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대체재를 구할 수 있다.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
타일러 코웬이 말하는 기업의 본질과 사회적 책임
이제 타일러 코웬이 우리에게 묻는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앞으로 기업, 그리고 기업의 참여자이며 동시에 감시자인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타일러 코웬은 책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어떻게 해야 할까? 실제로 많은 특정 경우에서 우리의 회의론은 기업을 개선시키기도 하므로 기업을 계속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동시에 우리는 기업 전반에 대해 적대감을 덜 품고 소비자나 근로자 또는 어쩌면 기업가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는 기업의 역할을 보다 더 고마워해야 한다. 기업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 대부분은 사실에 대한 오해나 때로는 잘못된 판단 기준의 적용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보다 더 명확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새롭고 보다 나은 개념
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이익을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번영과 자유를 포함한 사회적 목표를 증진시킬 것이다. 사람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소비자로서든 근로자로서든 기업을 더 신뢰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 같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모든 기업이 이런 점에서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기업들은 엄청난 부를 창조하고 정말 많은 새로운 기회를 새로 만들어내며 분명히 전 세계 모든 역사의 어느 민간 기관보다 더 나은 성과를 올렸다.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상황과 사회 현상에 대한 예리한 분석은 물론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독창적인 메메시지를 전해온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기업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불신이 얼마나 심한지를 얘기하는 것을 넘어, 왜라는 물음을 던졌고, 탄탄한 논리와 근거를 바탕으로 그 이유를 밝혀냈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 책은 지금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회 현상을 논의하는 데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