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무엇이 그렇게 다른가?
일본을 알아야 한국이 보인다
넓고 얕게 vs. 깊고 좁게, 디지털 vs. 아날로그, 흐름(Flow) vs. 축적(Stock)
한국이 몇 년 내지 몇 십 년 차이를 두고 일본의 상황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식의 진단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 징후로 일본이 앞서 겪었고 이제 한국에서 가시화되고 있는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 진행을 꼽기도 하는데, 과연 그러한 진단은 사실일까?
한국과 일본의 대학에서 각각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30년 가까이 머물면서 일본을 깊이 경험한 저자는 그런 진단은 일부 현상적 징후가 엇비슷하게 나타남을 지적하는 데 불과하다고 말한다. 물리적인 거리는 가까워도, 양국 간에는 그 근저에 깔린 사고방식을 비롯해 질적 및 양적으로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의 경제, 사회, 정치 등을 조목조목 비교하고 그 차이를 이 책에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는 양국 비교 및 이해를 위한 세 가지 축을 제시한다. ‘넓고 얕게’의 한국과 ‘깊고 좁게’의 일본, 디지털 한국과 아날로그 일본, 흐름의 한국과 축적의 일본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여기서 한국의 ‘흐름’ 속성과 일본의 ‘축적’ 속성에 주목하면서 앞으로 두 나라가 서로 가진 장점을 배우고 조화를 이뤄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흐름의 한국 축적의 일본》은 단지 무미건조한 모형과 분석으로 가득한 경제서가 아니다. 역사, 문화, 정치 등이 녹아 있는 저자의 경제학적 사고와 풍부한 경험이 신선한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독자들의 시야를 넓혀줄 것이다.
차이를 만드는 세 가지 축
저자가 양국 비교를 위해 제시한 세 가지 축 중 그 첫 번째는, ‘넓고 얕게’의 한국과 ‘깊고 좁게’의 일본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은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 관여하는 곳이 많은 편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식견이 다른 분야보다 높기는 하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며 상당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인은 여기저기 관여하는 바가 적은 편이라 자신이 종사하는 전문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성향이 강하다.
두 번째는, 디지털 한국과 아날로그 일본이라는 축이다. 조선 말기 쇄국 정책, 일제 식민지 지배, 한국전쟁을 거친 한국은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일본에 뒤져 있었다. 그러던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고 앞서가는 대표적인 분야가 ICT 산업이다. 이것저것을 경험하며 다시 비약을 이뤄보려는 성향이 강한 한국인에게는 디지털 속성이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일본인은 조직 내 사람들과 연계하며 그동안 해오던 방식을 조금씩 개선해나가는 아날로그적 사고에 익숙하다. 그래서 일본은 아날로그 기술과 부합하는 자동차나 기계장비 산업에서 강점을 발휘한다.
세 번째는 흐름의 한국과 축적의 일본이라는 축이다. 대륙과 해양을 잇는 지역에 위치한 한반도는 이것저것 혼합되어 흐름의 속성이 역력하다. 쌓인 자산이 금방 소진되기도 하고 다시 일약 큰 소득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이와 달리 대륙의 끝 섬에 자리 잡은 일본은 갖가지를 쌓아가는 축적 성향의 기질이 강하다. 장기간에 걸친 기술․자본․지식 축적이 많은 반면, 국채 누증처럼 바람직하지 않은 것도 쌓여왔다.
이 세 가지 축을 통해 저자는 사회, 경제, 정치 등에서 양국이 어떠한 특징적 차이를 보이는지, 한국인과 일본인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은 어떻게 다른지 명확히 밝히면서,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 및 나아갈 방향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은 구인난인데, 한국은 구직난인 이유
2017년 한국의 일인당 GDP는 29,891달러, 일본의 일인당 GDP는 38,550달러로 그 격차는 1.3배까지 좁혀졌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의 소득 수준은 해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으며,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한 자료 분석에 따르면 이 상태로 계속 갈 경우 2021~2022년쯤에는 한국의 일인당 GDP가 일본을 따라잡거나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의 소득 불평등도가 일본보다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부나 소득이 소수에게 심하게 집중되어 있으면 사회 후생 수준은 내려가게 되는데, 경제 정책을 평가할 때는 소득 수준과 더불어 ‘소득이 얼마나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가’라는 공평성 측면에서의 평가도 매우 중요하다. 요컨대 한국은 아직 일본에 비해 소득 수준이 낮고 소득 불평등도 심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한국은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것에 반해 일본은 사람을 못 구해 아우성이다. 일본의 고용 사정이 좋아진 데는 중소기업의 고용 흡수가 많고 이들 기업으로 노동 공급도 잘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그 사정이 다르다. 한국은 중소기업을 꺼리고 대기업이나 공무원으로의 취업을 바라는 세태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간의 격차 해소 등으로 구직자의 취업 선호가 변하지 않는 한 고용 확대의 저변이 넓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본의 경우처럼 고용 창출이 많은 제조업의 기반을 다지고 일본 전문가 풀을 통해 한국 일자리 문제를 개선하는, 즉 그 해답을 가진 일본을 적절히 활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흐름 속성을 가진 한국은 나쁜 것도 금방 바꾸지만 좋은 것도 잘 바꾸는 경향이 있다. 일본은 축적 속성으로 인해 좋은 것도 쌓이지만 나쁜 것도 쌓이기 쉬운 사회다. 흐름은 동적인 활발함이 있지만 불안정성을 내포한다. 축적은 정적인 안정감이 있지만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폐단이 있다. 요컨대 흐름이나 축적 중 한쪽만이 강조되면 불균형이 심화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나라의 균형과 발전을 위해 어려운 일일지라도 상대국의 장점을 살린 ‘넓고 깊게’의 추구,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 흐름과 축적의 조화를 제시한다. 이로써 두 나라의 불균형이 해소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말했듯이 한국은 취업난을 겪고 있고 일본은 구인난을 겪고 있다. 취업난이나 소득 불균형 등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 해답을 가진 일본을 활용하는 것이 분명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일본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먼저 일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흐름의 한국 축적의 일본》은 그 이해의 단초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