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으로 살고, 자식으로 살고, 부모로 사느라 바쁜 중년
그동안 지나쳐 왔던 그들의 진심을 듣다
1,000명 설문조사와 30명 심층 인터뷰로 풀어낸
낀 세대를 위한 정신건강 프로젝트
나이로는 40~50대, 직장에서 중간관리자 또는 관리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기둥과 허리처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은 분명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그들의 정신건강에 위험 신호가 감지된다. 우리나라 중년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된 정신건강지표들은 계속 나빠지고 있으며, 중장년층의 자살률은 해마다 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을 연구하는 전문기관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는 중년들의 정신건강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많은 징후들을 보고, ‘해피리더스(Happy Leaders)’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중년들의 위기는 곧 가정의 부조화와 다음 세대의 어려움으로 직결된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이 책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진심》은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해피리더스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 2년간 직장인 1,000명을 설문조사하고, 관리직급 직장인 3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하며 중년들의 솔직한 고백을 경청한 내용을 담았다. 앞만 보고 달려온 중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속 깊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물론 그들의 한숨과 한탄만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이 살아오며 느낀 자부심과 희망과 함께,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이겨내는 나름의 노하우도 가득하다. 저자들은 이를 토대로 독자들이 생활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정신건강 개선 솔루션인 ‘Here & Now Project’를 팁으로 제시했다. 밋밋하게 흘러가는 듯한 일상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실제적 방안인 셈이다.
직장에 속해 있으나 정작 자신의 미래는 홀로 책임져야 하는, 스스로 불을 밝히고 방향을 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등대지기. 급변하는 환경에 불안해하다 군중 속에 포함되어야 안도감을 느끼는, 그러면서도 개성을 상실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고독을 느끼는 한 인간. 우리 가족이나 지인들 중 한 두 명 쯤은 꼭 있는, 혹은 바로 당신 자신일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여기에 당신의 진심이 있다.
“저는 작은 손거울을 가지고 다니면서 가끔 제 얼굴을 봐요. 때로는 지금 내 표정을 휴대전화로 찍기도 해요. 내가 봐도 안 좋은 표정이면, 내가 왜 이러나 생각해봐요. 그렇게 노력했더니 지금은 표정이 많이 좋아졌어요. 일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찌그러지기도 하지만요.” - 인터뷰 중
“부장님, 당신의 멘탈은 괜찮습니까?”
맡은 역할이 너무 많아서 불안한 중년의 마음
‘배우자에게는 튼튼한 버팀목, 자녀에게는 모범이 되는 자애로운 부모, 부모에게는 어디 내놔도 자랑할 만한 자녀, 부하직원에게는 롤모델이 되어야 하는 상사, 동료에게는 배신하지 않는 든든한 우군, 사회에서는 갑질하지 않는 어른, 재테크 전문가,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예비 노년…….’
중년 직장인이 맡고 있는 역할은 언뜻 생각해봐도 참으로 다양하고 막중하다. 이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배우자이면서 부모이고 자식이다. 가정에서만 동시에 세 가지 역할을 해내야 한다. 또 다른 삶의 한 축인 직장에서도 다양하고 주요한 역할이 주어진다. 그리고 사회라는 보다 큰 틀에서 바라보았을 때도, 청년층과 노년층 사이 딱 중간에 서 있다. 이들의 정신이 건강하고 행복할수록, 가정‧직장‧사회가 더욱 건강하고 성숙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갈수록 세대 간 격차가 커지며 다양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이때,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기 쉬운 위치다. 그리고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중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함정들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우리나라 중년 직장인들의 정신건강이 위기에 처했음을 알리는 지표는 이미 다양하게 보고되었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조울증과 관련하여 최근 5년간 심사 결정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진료인원 3명 중 1명 이상이 40~50대로 나타났다.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또한 국가적으로 자살 예방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청소년·청년·노인의 자살률은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인 데 반해, 중장년층의 자살률은 해마다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2015년 23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급실을 찾은 자살·자해 시도자 중 40대(19.7%)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65세가 넘으면 정신건강과 관련된 다양한 복지정책을 제공받을 수 있지만, 40~50대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책적 지원이 없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무엇보다 2012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근로자 정신건강 관련 자료에 따르면, 45~54세 근로자의 정신질환 발병 건수는 직전 연령대인 35~44세와 비교할 때 3.52배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1.54, 캐나다 1.19, 영국 1.16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에서는 관리직급으로 들어서면 정신건강이 급속히 악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 그래서 귀 기울여야 하는 말들
언제 우리 사회가 그들의 입을 통해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던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 책은 중년들이 무엇이 가장 힘든지, 진짜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며 시작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무엇이 이들을 힘들게 할까? 뿌듯함을 느끼고 힘을 얻을 때는 언제일까?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 직장, 밀어주고 끌어주는 전쟁터
중년 직장인들. 일반 사원이었을 때는 ‘놀고먹는’ 것 같던 관리직의 자리에 지금 그들이 있다. 그들도 이제는 안다. 이 자리가 절대 놀고먹는 자리가 아니라는 걸. 오히려 직급이 올라갈수록 또 다른 스트레스가 추가된다. 회사에서 직급으로 부른다는 건 ‘여기서부터는 당신들이 이거 이거는 해야 된다’라는 의미란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직급이 부여된다는 건 그 순간 다른 역할, 의무가 주어졌다는 의미인 것이다. 핵심은 정확한 책임 부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직장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원인으로 크게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는 성과에 대한 압박, 둘째는 외면할 길 없는 사내 영업, 그리고 셋째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퇴사였다. 과도한 업무량과 직무 관련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는 번아웃 증상은 스트레스가 높아짐에 따라 서서히 증가하여 결국 병리적 수준에 이른다. 그러나 관리직급의 번아웃은 두드러진 증상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심각한 상태로 나타난다. 특히 번아웃의 초기 증상인 ‘성과 저하’가 관리자들에게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웬만큼 높을 때 오히려 성과가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리자들의 번아웃은 조기에 증상을 인식하고 예방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제 선장으로서 일을 하는 위치에 왔는데, 아직도 밑에 있는 것 같아요. 밑에 사람은 바뀌었지만, 위에 사람은 똑같고…. 그래서 과연 내가 정말 관리자인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죠.” - 인터뷰 중
‣ 가족, 오늘도 내가 회사에 나가는 진짜 이유
관리직급이 직장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다시 의미를 찾고 스스로 힘을 내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딱 하루만 연차 내고 쉬고 싶은데도, 이를 악물고 오늘도 출근하는 진짜 이유 말이다. 많은 중년들이 ‘가정’과 ‘가족’에서 그 답을 찾고 있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행복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함께 보내지 못하는데도 함께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눈 맞춤 한 번 제대로 못 하는 날이 계속돼도,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게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가족들이 알아줄 때가 그렇다. 나조차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은데, 가족들이 그 의미를 먼저 알아줄 때의 따뜻한 위로는 가정 밖에서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인정보다 크다.
아이들이 그래도 부모가 나름 하루하루 인생을 열심히 사느라 이렇게 바쁘고 고단하다는 것을 알아줄 때 힘이 나고, 또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님에 대한 애잔함과 고마움은 갈수록 깊어지고 기운을 내게 된다. 특히 배우자가 나의 힘든 상황을 이해해주고 있다고 느낄 때면 힘이 불끈 솟는다. 너무 바쁘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내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직장에 대해 배우자가 응원해주는 것만큼 뿌듯한 순간이 또 있을까. 떨어져 있는 시간은 길어도 결국에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결국 ‘가정을 위하는 마음’만큼은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 때, 비로소 배우자가 든든한 ‘동지’가 된다.
“팀원들한테도 얘기하지 못하는 비밀들, 예를 들어 저성과자 명단이 내려오거나 그러면 솔직히 되게 힘들거든요. 그때 배우자한테 이야기해요.” - 인터뷰 중
이 책이 중년 직장인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도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서로의 진심을 알아야 비로소 이해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책이 중년과 주변 사람들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한 번에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그리고 때로는 스스로를 답답해하고 이해하기 힘들어할 것이다. 하지만 아주 사소하더라도 이 책이 진정으로 공감하는 한순간을 선사한다면, 우리나라 중년 직장인들뿐 아니라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가족과 동료들, 그리고 친구와 이웃들의 마음도 따뜻하게 해주리라고 믿는다. 이런 따뜻한 순간들을 하나하나 모으고 쌓아가는 것이 이 버거운 일상에서 행복을 붙잡는 길 아닐까?
“지금 인터뷰한 거, 파일 좀 보내주실 수 있나요? 평소에는 쑥스러워서 직접 말 못 했는데, 배우자와 애들한테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 49세, 화학 관련 기업 이사